개요: 미디어의 뒷면을 파헤치는 위트와 진정성의 조화
2021년 방영된 태국 벨드 ‘러블리 라이터(Lovely Writer | นับสิบจะจูบ)’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판타지 소설 작가가 등 떠밀려 쓴 BL 소설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 속에서 만난 잘생긴 연하 남배우와 얼떨결에 동거까지 하게 되며 벌어지는 몽글몽글한 일상 로맨스가 핵심 축이다.
이 작품이 남다른 이유는 단순한 설렘을 넘어 BL 업계의 미디어적 한계나 상업적 연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위트 넘치는 메타적 요소를 가득 담아냈기 때문이다. 풋풋한 로맨스와 현실적인 미디어 비평이 공존하는 참신함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다.

줄거리: 거짓말로 시작된 동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 연애
원래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었던 25세 작가 진은 편집장의 강력한 권유로 어쩔 수 없이 BL 소설 '나쁜 엔지니어(Bad Engineer)'를 집필한다. 이 소설이 예상을 뒤엎고 대히트를 치면서 급기야 실사 드라마로 제작되기에 이른다.
오디션 현장에 얼떨결에 참관하게 된 진은 압도적인 비주얼과 직진 매력으로 무장한 20세 신인 배우 넙십을 만난다. 넙십은 오디션 도중 진을 상대로 강렬한 대본 리딩 연기를 선보이며 주연 자리를 꿰차고 이후 진의 대학 동창이자 넙십의 매니저인 툼의 청으로 인해 두 사람은 한 달간 진의 자취방에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집안일도 척척 해내며 다정하게 다가오는 넙십의 거침없는 플러팅에 진은 번번이 페이스를 잃고 당황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꽉 막혔던 다음 작품의 영감을 얻어 나간다. 술에 취한 진을 신사적으로 보살펴주거나 대본 연습을 핑계로 첫 키스를 나누는 등 두 사람의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넙십을 향한 상대 배우 어이의 수상한 견제와 대중의 과도한 관심은 미디어 노출을 꺼리는 진을 점점 압박한다.
설상가상으로 6화에 이르러 넙십이 사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던 옆집 동생이었다는 비밀이 밝혀진다. 넙십은 진이 자신을 그저 어릴 적 유치한 놀이를 하던 동생으로만 볼까 봐 정체를 숨기고 접근했던 것이다. 거짓말로 시작된 동거와 과거의 서사가 교차하면서 단순한 작가와 배우를 넘어 지독하고도 깊은 감정의 폭풍 속으로 빠져든다.
캐릭터 분석: 입체적이고 매력 넘치는 등장인물 총정리

• 진(Up Poompat): 소심하고 민감하지만 정체성을 향해 직진하는 츤데레 작가
BL 소설 'Bad Engineer'의 원작자이지만 정작 본인은 몽환적인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내향적인 인물이다. 조용하고 깨끗한 일상을 지향하지만 정작 본인의 자취방은 늘 어지럽혀져 있다.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과 타인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며 초반에는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에 대해서도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친구들의 게이가 아니냐는 추궁에 예민하게 굴던 그지만 넙십과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후에는 그 누구의 압박도 없이 스스로 가족들 앞에 커밍아웃을 선언할 정도로 성숙해진다. 업 푸미팟의 자연스럽고 섬세한 생활 연기 덕분에 진이라는 인물이 가진 기쁨, 슬픔, 혼란이 지극히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 넙십 (Kao Noppakao): 용의주도한 계산과 열정적인 순정을 동시에 품은 동의의 왕
경영학을 전공하는 20세 대학생이자 드라마 'Bad Engineer'의 남주인공이다.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귀공자 같은 분위기와 넘치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결코 오만하지 않다. 차갑고 이성적인 머리로 진에게 접근할 거짓말과 계획을 세우지만 속마음은 진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이중적 매력의 소유자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품어온 진에게 거절당할까 두려워 정체를 숨겼지만 스킨십에 있어서는 상대의 동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윗함의 결정체다. 진이 만취했을 때도 절대 선을 넘지 않고 늘 상대의 의사를 먼저 묻는 신사적인 태도가 신뢰감을 준다.

• 어이 (Bruce Sirikorn): 상처와 욕망 사이에서 자신을 파괴해 가는 복합적 악역
넙십의 상대역으로 발탁된 배우다. 겉으로는 상큼하고 차분해 보이지만 성공에 대한 강박과 스타덤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하다. 과거 가족과의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며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넙십과 진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거짓말을 퍼뜨리고 음료에 약을 탔다는 악의적인 모략까지 서슴지 않는다.
시청자의 답답함을 자아내는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자주 보이지만 미디어 판도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불쌍하면서도 어두운 그늘을 가진 인물이다. 어이를 사랑하는 목과 잘 돼서 구원받길 바랐지만 끝내 바닥까지 내려가 혼자 남겨지는 어이가 불쌍하고 안쓰럽다.
• 툼(Ken Prarunyu): 고군분투하는 현실주의 매니저
진의 대학 동창이자 넙십의 매니저다. 두 사람이 동거하게 되는 결정적인 판을 까는 인물이다. 연예계라는 거친 바닥에서 자신의 배우를 지키기 위해 발로 뛰는 그는 때로는 진과 넙십의 관계를 지켜보며 커다란 감정적 고뇌를 겪는다. 자수와 메이크업을 좋아하는 섬세한 취향을 지녔으며 현실적인 직장인의 애환과 친구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인간적인 매력을 풍기는 입체적인 조연이다.
• 티피(Zorzo Nathanan): 고정관념을 보란 듯이 깨부수는 사이다 걸크러시
어이의 매니저다. 시원시원한 성격과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사이다 캐릭터다. 전통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매력적인 설정의 소유자로 킥복싱이 취미이고 오토바이를 직접 수리할 줄 알 정도로 터프하다. 소심하고 아기자기한 툼과 대비되며 극에 신선하고 유쾌한 기류를 불어넣는다. 어이의 상처를 감싸안으려 노력하는 다정한 동료이기도 하다.
• 힌(Kenji Wasin): 현실적인 창작자의 고뇌와 생존을 대변하는 인물
진의 조교이자 또 다른 신인 작가다.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진과 달리 극심한 생활고와 업계의 냉혹한 평가에 시달린다. 아무리 노력해도 빛을 보기 힘든 현실적인 웹소설 시장의 잔혹함을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다. 11화에서 어머니와의 통화를 통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며 이후 진과 부아의 도움으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모습은 따뜻한 연대의 가치를 느끼게 한다.

시청포인트: 이 드라마를 반드시 봐야 하는 4가지 이유
① 완벽한 동의하에 펼쳐지는 달콤하고 대담한 스킨십
진과 넙십이 보여주는 로맨스 수위와 스킨십의 합은 BL 장르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2화에서의 대본 연습 첫키스부터 9화의 열정적인 밤에 이르기까지 넙십은 늘 진의 의사를 존중하고 허락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이 취했을 때는 단호하게 절제하고 서로의 마음이 확인된 후에는 10화 한 회 동안만 여러 번의 키스신이 쏟아질 정도로 솔직하고 뜨거운 애정 표현을 나눈다. Kao와 Up의 환상적인 케미가 광대를 승천하게 만든다.
② BL 장르 자체를 해학적으로 비틀어버린 매운맛 메타 요소
작품 내부에서 BL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설정을 활용해 실제 BL 미디어 산업의 이면을 유쾌하면서도 뼈있게 꼬집는다. 무조건 수위 높은 장면만 요구하는 편집장 부아의 억지스러운 요구나 여성화된 게이 배우를 배척하는 업계의 편견 그리고 판타지만을 소비하려는 팬덤 문화에 대해 진의 입을 빌려 직구를 날린다. 장르를 자아비판하면서도 본연의 재미를 잃지 않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③ 뻔한 클리셰를 기분 좋게 뒤집어버리는 통쾌함과 성 역할 반전
성 역할의 반전이 돋보이는 툼과 티피의 관계를 비롯해 흔히 소비되는 로맨스 클리셰를 세련되게 비틀어버리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남성적인 여성 티피가 오토바이를 고치고 섬세한 남성 툼이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등 성별 고정관념을 허무는 설정이 신선하다. 또한 오해로 질질 끌기보다는 솔직한 대화로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주인공들의 태도가 통쾌함을 선사한다.
④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는 가족 서사와 10화의 눈물샘 자극
9화와 10화에 걸쳐 전개되는 가족들과의 커밍아웃 서사는 이 드라마의 감정적 하이라이트다. 특히 10화에서 진의 아버지가 과거 자신이 겪었던 동성애자로서의 상처와 아픔을 고백하며 아들이 자신과 같은 시련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물 흘리는 장면은 단연 명장면으로 꼽힌다. 가벼운 로맨스를 넘어 진정한 이해와 무조건적인 가족애를 보여주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총평: 약간의 용두사미를 완벽히 메꾼 스페셜 에피소드의 승리
‘러블리 라이터(Lovely Writer | นับสิบจะจูบ)’는 섬세하게 짜인 캐릭터 서사, 화려한 비주얼, 확실한 팬서비스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춘 웰메이드 작품이다. 비록 극 후반부인 11화에서 미디어 스캔들과 어이의 악행으로 갈등이 치닫고 12화 결말부의 해소가 다소 서둘러 마무리된 감이 있어 아쉬움을 남기기는 한다. 본편 결말이 살짝 맥이 빠지는 느낌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영 한 달 뒤 공개된 1시간 45분 분량의 스페셜 에피소드가 그 아쉬움을 깔끔하게 씻어낸다. 본편으로부터 2년 후의 이야기를 다룬 스페셜 에피소드는 특유의 유쾌함과 따뜻한 감성을 완벽히 회복하며 시리즈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한다.
몇몇 매끄럽지 않은 전개에도 불구하고 업 푸미팟의 빛나는 생활 연기와 까오 노파까오의 다정한 남주 매력, 그리고 완벽한 동의에 기반한 세련된 스킨십 서사는 작품 전체를 단단하게 견인한다. 웃음과 설렘, 매콤한 미디어 비판까지 꽉 찬 로맨스를 즐기고 싶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명작이다.

작품 정보
• 제목: 러블리 라이터(Lovely Writer | นับสิบจะจูบ)
• 장르: 태국BL드라마, 로맨스, 엔터테인먼트 산업, 소셜 미디어, LGBTQ+
• 편수: 총 12부작+스페셜 에피소드 1부작
• 방송: 2021.02.24.~05.12. / 스페셜 2021.06.09.
• OTT: 왓챠, 웨이브, 헤븐리
• 원작: Wankling의 소설 "Nap Sip Ja Jup"(นับสิบจะจูบ)
• 극본: Jungjing Wanna Kortunyavat, Somchai Tidsanawoot, Tan Ekarin Mungmee
• 감독: Tee Bundit Sintanaparadee
• 등장인물(출연진): 넙십/Nubsib(까오 노파까오/Kao Noppakao), 진/Gene(업 푸미팟/Up Poompat), 어이/Aoey(Bruce Sirikorn), 목/Mhok(Chap Suppacheep), 힌/Hin(Kenji Wasin), 툼/Tum(Ken Prarunyu), 티피/Tiffy(Zorzo Nathanan), 부아/Bua(Fongkee Papinee) 등
<참고>
• 까오업(KaoUp) CP 출연작(1편): Lovely Writer(2021), Lovely Writer Special Episode(2021)
• 업 푸미팟(Up Poompat) 출연작: Step by Step(2023), My Stand-In: Uncut(2024), You Are My Present(2025), Love of Silom(Uncut Ver.)(2026)
• 까오 노파까오(Kao Noppakao) 출연작: Until We Meet Again(2019)